연말부터 서점 문구 코너에는 신년 다이어리가 브랜드마다 즐비하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가죽 커버까지 계획적으로 새해를 살겠다는 이들의 욕망을 한껏 부추긴다.

2018년부터 새롭게 시도한 것 중 하나가 다이어리 사용이다. 디지털에서 종이로 옮겨오면서 얻은 장점과 그간의 기록 방식에 대한 변화를 정리해 봤다.

일기장

유년시절 일기장을 다시 보는 것은 무척 재미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과거의 흔적에 빠져 버린다. 서투룬 필체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어릴적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추억의 일기장

노트북

첫 노트북은 compaq의 2000년대 초반 모델이다. 아버지가 쓰시던 것을 물려 받아 전공 공부에 사용했다. 종이에 기록했던 일기를 노트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첫 어플리케이션이 오픈오피스였다. 컴퓨터 자판은 생각의 속도만큼 글을 입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록하는 분량이 부쩍 늘었다. 디지털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은 ‘검색‘이다. 몇가지 키워드만 떠올리면 수 초 내로 몇 년 전의 기록을 찾아낼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리뷰했다. 신년마다 년간/분기별/월간 계획을 세운다. 리뷰는 반대 방향으로 한다. 목표대비 어떤 결과를 낳았고 부족한 것은 다음 기간으로 넘긴다. ‘기록을 조직화하고 주기적으로 리뷰‘하는데는 종이보다 디지털 도구가 확실히 편했다.

클라우드

2010년 초반부터 클라우드와 모바일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록을 위한 앱도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 에버노트데이원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오픈오피스와 달리 ‘데이터 손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점‘이 가장 좋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사진, 음성, 위치, 날씨, 활동 같은 ‘메타정보까지 기록‘할 수 있었다.

디지털 기록을 7년간 사용하다 보니 가장 큰 어려움이 리뷰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저녁이되면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퇴근후 화면을 보기위해 의자에 앉는 것도 허리에 적잖은 무리를 준다. 바닥에 않거나 침대에 누워서 보고 싶을 때가 많다.

다시 종이 노트

그래서 올해부터는 종이 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생각의 흐름대로 모든 것을 기록했던 습관이 종이 위에서는 불가능했다. 키보드에서 펜으로 바꾸면서는 떠오르는 생각을 어느정도 요약해야만 기록이 가능했다.

노트와 만년필

랩탑을 벗어난 환경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궁금하면 인터넷을 찾고 메세지에 바로 응답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디지털 도구를 멀리했다. 펜과 종이만 의지해서 기록하자 점점 ‘글쓰는 것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어디서든 생각을 쏟아낼 수 있다. 퇴근하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엎드려 글을 쓴다거나, 아침에 일어나 햇살 좋은 곳을 찾아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수 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며칠 전, 몇 시간 전에 기록한 내용을 리뷰한다. 이건 ‘학습‘에 무척 효과적이다. 반복적으로 기록을 되새기면 생각을 더 확장하고 중요한 정보는 절대 잊지 않는다.

단 종이의 단점은 검색이 어렵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정기적으로 기록을 요약해 에버노트에 다시 기록한다.

디지털 대체 불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을 대체할수 없는 영역이 있다. ‘가계부‘가 대표적이다. 종이 가계부가 더 편하다는 어머니는 모든 재정을 가계부와 주판으로만 기록하신다.

연도별 가계부

반변 나는 디지털 도구로 기록한다. 오픈오피스, MyMoney(직접 만든 가계부 웹앱),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재정을 관리하는데 이것 만큼은 디지털이 확실히 효율적이다. 최소한의 입력으로 다양한 결과를 보여주는 점이 그렇다.

악보‘는 종이와 디지털을 함께 사용한다. 연주 메모는 나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손 글씨가 월등하다. 다만 디지털을 사용하는 이유는 검색과 녹음때문이다. 아날로그로는 오디오를 기록할만한 수단이 딱히 없다.

에버노트 녹음파일

업무노트‘도 디지털을 고수한다. 기술 문서, 소프트웨어 설계 따위의 업무 관련 기록은 양도 많고 검색도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리한 뒤 회사 문서 저장소(지라, 컨플루언스, 노션 등 회사 정책에 따라 다르다)에 공유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조각 모으기

조각 모으기라는 기록 패턴이 있다. 가령 나는 ‘독서할 때 작은 메모지‘를 책갈피로 사용한다.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이름(러시아 소설은 이름이 정말 헷갈린다)이라던지 각 챕터별 요약 (어려운 책은 이렇게 해야 전체 맥락을 파악할수 있다)을 메모지에 기록한다. 완독한 뒤 메모를 정리해서 독후감을 에버노트에 작성한다.

외출 시 호주머니에 들어갈 크기의 ‘수첩과 펜‘을 챙긴다. 걷다가 혹은 지하철을 기다리다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다. 집에 돌아와 이것을 노트에 기록하는데 좀 더 다듬어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물론 버려지는 메모도 허다하다

수첩과 펜

예배 시간에는 나눠주는 ‘주보의 빈 여백‘을 활용한다. 떠오른 생각이나 설교 내용을 아무렇게나 기록한다. 집에 돌아오면 정리해서 나름의 설교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 사용한게 한글97이었지? 덕분에 학교에서 리포트는 누구보다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

디지털과 종이의 조화

대부분 디지털 도구로 기록하다가 지난 일 년은 종이 노트를 사용했다. 확실한 장점은 리뷰를 자주 한다는 것. 때문에 앞으로도 종이 노트 기록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다만 검색과 데이터 보존의 장점을 갖는 디지털 도구와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게 중요할 것 같다.